2020년 새해를 맞이하여 내일갤러리에서는 허미자 초대전 <섬, 아닌 섬>을 연다.
Untitledㅣ194 x 130cmㅣmixed mediaㅣ 2019
화가 허미자의 붓끝에서 하나 하나 태어나는 어두운 색의 묵흔(墨痕)들은 막막한 화면 공간에 다도해의 섬들처럼 산포된다. 그러한 붓의 흔적들은 밋밋한 평면공간을 들쑥날쑥한 복합적 공간으로 만든다. 다양한 면적과 형태를 가진 얼룩들 사이에 펼쳐지는 공간은 얼룩들을 고립시키기보다 그것들을 더욱 크고 넓은 차원으로 밀어넣는다. 그럼으로써 붓의 자취들은 독자적인 공간에서 벗어나 다른 얼룩들과 함께 다층적 풍경을 이룬다. 섬, 또는 묵흔들은 다른 흔적들과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며 서로 가까워지거나 멀어진다. 가까이 있는 얼룩들은 서로 환영처럼 겹쳐지고 스며들며 서로를 당기거나 밀어내고, 지우거나 살려낸다. 빈 공간에 여기저기 떨려 나온 얼룩들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이 가진 공간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Untitledㅣ194 x 130cmㅣmixed mediaㅣ 2019
섬의 비밀은 보이지 않는 물 속에 잠겨있는 더 큰 몸의 일부라는 데에 있다. 그것들은 서로 멀리 있는 다른 섬들과 따로 떨어져 고립되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물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섬들은 육지와도 이어져 있다. 그들은 하나의 모체로부터 다른 곳에 솟아나있는 다른 모양의 가지와 잎새들이다.
오랫동안 허미자는 나무나 식물의 몸통에서 따로 떨어져나온 듯이 보이는 가지나 잎새의 일부를 아크릴 물감으로 밑칠을 해놓은 화면의 바탕 위에 먹물을 사용하여 거친 드로잉으로 그려내는 작업을 해왔다. 그것들은 한계지워진 사각의 화면에 잘려서 고립된 개체로서가 아니라 각자가 화면 밖의 더 큰 몸체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그것은 섬이 섬이 아니라 육지의 일부이듯이 더 큰 실체의 단편들처럼 불현듯이 드러나 있다.
화가 허미자가 이들의 모체로서 어떤 커다란 존재를 구체적으로 전제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그것이 그녀의 작업에서 필요한 요인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개체가 개체로서 독자적일뿐만 아니라 개체 이상의 존재가 되는 것은 개체가 자신과는 또다른 모체를 늘 생각해서가 아니듯이 그것들은 우선 홀로 존재하지만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더 큰 존재의 부분으로서도 존재한다.
눈에 보이는 무수한 사물들의 구체성이 흐릿해지는 지점에서 상상의 여백이 한껏 둥지를 튼다. 여백은 보기보다 넓고 깊게 그것이 에워싸는 사물들의 막막한 밀도를 초월한다. 여분의 공간에 자리하는 얼룩들은 무한히 상상력의 영토를 넓혀간다. 그녀의 붓이 그려내는 실루엣의 흔적들은 각자의 캄캄한 어둠 속에 다양한 형태와 풍부한 표정을 숨기고 있다. 동양화의 필법에서 나오는 묵흔 같기도 한 그것은 그러기에 동양적인 현(玄)의 오묘함과 깊이를 함축하고 있다. 실루엣이 감추고 있는 보이지 않는 표정들은 그래서 더욱 깊은 상상의 여지를 숨기고 있다. 먹물의 생생한 기세와 농담을 한층 더 누그러뜨리는 마감재인 미디움의 피막 아래에서 그것은 가장 온전한 심급으로 살아있다.
동양의 사유를 깊이 있게 연구한 프랑스의 철학자 프랑스와 쥴리앙(Francois Jullien)은 ‘큰 이미지’는 형태를 갖지 않는다고 말했다. 만일 근대 이전의 서구인들이 그랬듯이 하나의 시점만으로 대상을 파악하고 고정시킨다면 그 대상은 수많은 다른 시점들을 잃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회화가 대상을 하나의 분명한 형태로 잡아두기 위한 고정된 시점을 버리고 다시점 또는 무시점을 향해 진화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묵(墨)의 그윽함이 가진 오묘한 깊이에 세상의 이치를 내맡기고 있었다. 따라서 허미자의 회화적 태도는 오히려 이러한 동양의 정신에 닿아있는 듯이 보인다. 그녀의 필흔(筆痕)을 파생시키는 보다 더 큰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물론 하나의 명확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허미자의 회화가 숨기고 있는 함의는 더욱 크다.
이처럼 그녀의 묵흔, 혹은 섬은 섬이되 섬이 아니다. 섬은 더 큰 세상을 숨긴 하나의 표정이다. 그것은 구체성을 생략하고 묵묵히 드러난 그대로 담담하게 세상 만물을 받아들여 고요하게 껴안는다.
글 (미술비평) 조형예술학 박사 서길헌
갤러리 내일 <섬, 아닌 섬> 허미자 초대展 리뷰_20200108 작성-
홍희진(조형예술학, 전시이론)
허작가의 ‘묵흔(墨痕)’에 대한 단상 홍희진(조형예술학, 전시이론) 섬의 일각들을 재현해 놓은 작은 화폭은 관객의 눈을 게슴츠레 뜨고 뒷걸음 쳐 멀리서 보도록 주문을 건다. 작품으로부터 몇 발자국 뒤에서 진가가 발휘되는 전통적인 평면회화 감상법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이번 전시는 허작가가 섬을 소재로 그린 2004년과 2019년 제작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이다. 2004년 제작 작품들은 두터운 먹과 미디움의 균열 기법을 통해 그 틈들의 군집과 표면의 높낮이에서 오는 밀도감에서 에너지를 자아낸다면 최근작들은 섬의 매력을 볼 수 있는 그 시간대로 관객을 쉬이 초청해낸다. 섬은 바다 위 빛의 잔망들과 함께 그 인상을 만들어낸다. 해를 그리지 않았지만 화폭 속 이 재현의 피사체들은 햇빛을 받아 반사하고 있다. 결코 실제와 동일할 수 없는 재현의 한계를 허작가만의 ‘묵흔’ 어법으로 환원해놓는다. 이러한 어법에서 인상파 작가들의 고민이 발견되는데, 허작가의 초지 일관적 작품 세계는 ‘먹’이라는 재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색채를 가지지 않은 먹의 농담을 가지고 빛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흔적이 보인다. 마치 ‘섬 시계’와 같이 각 섬들의 드러난 표면 정도로 빛을 느끼고 시간을 추측하게 되는 깊은 여운은 이 재료적 특성에 닿아있다. 이는 서양 인상파 화가들이 점묘기법까지 개발한 색채과학과는 전혀 다른 동양회화의 주 재료인 먹을 통한 허작가만의 고유기법이다. 섬의 일각으로 심연의 그 형체를 알 수는 없지만 이를 품고 있는 바다가 있어 바라보는 우리와 분리되어있다. 아득히 바라보게 해주는 장치이자 분리감을 선사하는 바다는 최근 제작한 작품에서는 공백으로서 정제되어있다. 전시의 심연에는 섬 속에서 만났을 법한 대형 잎사귀와 그 앞, 혹은 뒤로 가로지르는 나뭇가지들을 배치한 작품으로 관객을 주목시킨다. 이는 멀리서 본 섬들과는 다른 화법을 구사한다. 대형 잎사귀, 작은 풀잎들, 나뭇가지들이 평면 위에 그려져 있지만 마치 사진과 같이 허작가의 눈에 담긴 피사체는 먹의 농담에 의한 두께가 생겨 각기 다른 빛 투여도를 갖는다. 먹의 농담 기법으로 거리상 선후를 알 수 없는 이 대상들은 화폭 위에 고스란히 중첩되어있다. 미국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만 레이의 여러 대상마다 노출시간을 달리하여 카메라 없이 사진을 중첩 제작한 ‘레이요그래프(Rayograph)’ 기법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허작가의 작품은 유화의 인상주의와 사진의 초현실주의가 발견되는 기이한 수묵 회화로서 ‘빛’에 대한 밀도 있는 연구이자 긴 여정의 발화이다.
허미자 Huh Mi ja
1989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M.F.A
1985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B.F.A
개인전
2017 남아있는 나날들, 아트스페이스 휴, 파주 2017 평면의 기억, 무위의 회화, 아터테인, 서울 2016 지나가는 바람에 말걸기, 자하 미술관, 서울 2015 로고스 전원갤러리, 의왕, 경기도 2006 국립 고양 스튜디오갤러리, 고양 2004 금산갤러리, 서울2003 라스트라다, 서울1999 갤러리 퓨전, 서울1996 토탈미술관, 장흥1994 미건 갤러리, 서울1991 토탈갤러리, 서울1984 관훈미술관, 서울
기획전
2019 안평과 한글: 나랏말싸미,자하미술관, 서울 거슬러 오르는 이미지들, 포항문화재단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 꿈틀 갤러리, 포항2018 회화, 평면에 담긴 세상, 고양 아람미술관, 고양 2017 안평대군의 비정원전, 자하미술관, 서울2016 중성지대: 실재와 허상사이, 이공갤러리, 대전 현대미술 6인 6색, 안젤리미술관, 용인2015 오승우미술관 개관 기념전, 오승우 미술관, 무안군, 전남 빵의 예술, 혼의 예술, 갤러리 피아룩스, 서울2014 현대작가전, 동덕아트갤러리, 서울2013 박물관이미지, 동덕여자대학교 박물관, 동덕아트 갤러리, 서울 2013 AR-TOWNS 비리전시공간 및 창작공간 아트페스티벌, 부산-군산-대전-서울 순회전 아트 캠페인 바람난 미술, 서울역사박물관 신촌역사, 서울2012 아트 경주 2012 ‘특별전법고창신 -경주에서의 대화, 경주 예술의 전당2011 10인의 물질적 공간전, 공평 아트센터, 서울 심해의 도약, 성신여대 운정 그린 캠퍼스 전시장 adagio non molto, 이언 갤러리, 서울 파주아트플랫폼 오픈스튜디오, 파주아트플랫폼, 파주출판단지2010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KIC Art Center, 상하이, 중국 아트쉐어, 동덕아트센터, 서울 Pure Distance – Leap, Flow,Mix, Up,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파주출판도시 Signs of the ‘Invisible world, 동덕 아트갤러리, 서울 한국의 나무전-나무의 초상, 공평 아트센터, 서울2009 서울의 새 아침전, 서울아트센터 균형점, 하나이면서 각각인, 동덕아트갤러리, 서울 Sensitivity & Abstraction, 사이아트 갤러리, 서울 KOREAN-AUSTRALIAEXCHANGE EXHIBITION, Global gallery 시드니, 호주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 서울&호주 St-art 2009 Art fair, 스트라스부르크, 독일 예술, 출판도시와 마주치다, 갤러리 지지향, 파주출판도시2008 ESSENTIIELLE, 코리아 아트센터 -The Space, 부산2007 KOREAN PROJECT EXHIBITION, C5 art 갤러리, 베이징, 중국 Select Collection, 갤러리 현&사이아트 갤러리, 서울 Imfuse-혼재와 생성의 에네르기를 위하여, 갤러리 벨벳, 서울2006 SUB Open Studio, 고양미술창작 스튜디오, 고양 Foresight 2006, 오프라 갤러리, 서울2004 회화와 도예의 만남Ⅱ, 리즈갤러리, 서울2003 8층 보기, 현작소, 서울2002 회화와 도예의 만남, 리즈갤러리, 서울 아지오 갤러리 신춘기획 5인전, 아지오갤러리, 서울2001 낭만주의의 두개골을 만지다, 토탈미술관, 장흥2000 새천년 3.24, 서울시립미술관, 서울1999 윤숙영, 허미자, 허정문, 조선화랑1998 퓨전 1-17인전, 갤러리퓨전 개관기념전, 갤러리 퓨전 오늘의 청년, 두손갤러리, 서울1996 한국미술 오늘과 내일 96, 워커힐미술관, 서울 한국 현대미술 8인전, 일본, 삿뽀로1993 표현의 방법, 관훈갤러리, 서울 대한민국 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1992 서울 - 삿뽀로,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레지던시
2011~ 현재 휴+네트워크 창작스튜디오 입주
2010 파주아트플랫폼 입주작가
국립고양창작스튜디오 2기 입주작가
작품 소장
2012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2003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2006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주식회사 오토 인더스트리 정림건축
내일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3길 3 (내일신문) B2
관람시간 오전 11시부터 6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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